아홉 번째 집 두번째 대문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장편소설
▣ 대필 작가의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을 섬려하게 넘나드는 몽환적 일상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의 주인공은 생계를 위해 반지하 연립주택에 사무실이자 주거 공간을 꾸려놓고 변두리 삶을 살아가는 대필 작가이다. 그에겐 살아오면서 얻은 크고 작은 상처가 많다. 무능력했던 아버지에 대한 먹먹한 그리움,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이웃집 누이에 대한 괴로움, 잊고 지내온 어린 시절 동무에 대한 미안함, 회사 동료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착잡함, 온 마음으로 자신을 따랐던 반려동물에 대한 애틋한 기억…… 살아오면서 세상에 대해 냉담했던 일이 마음속 깊은 부채의식으로 남아 있다. 이제 아내마저 여읜 그에게 하루하루 위로가 되어주는 것은 씁쓸한 현실의 삶과는 다른, 달짝지근한 막걸리뿐이다.
식당 창밖으로 눈발이 날리는 게 보였다. 처음엔 싸락눈인가 싶더니 곧 굵은 눈송이가 무성하게 휘날려 식당을 나섰을 때는 벌써 도로 바닥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식당 앞 인도 한가운데에 한참 서 있었다. 거리는 빠르게 흰색의 단일한 색조로 바뀌어 갔다. … 어디든 전화 걸 데가 있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pp. 46~47)
나이가 마흔쯤 되면 버릇이 옹이처럼 삶에 박힌다. 무심코 반복되는 그것들 속에 욕망도, 상처도, 사는 방식도 다 들어 있다. 생계 문제로 벌이는 게 아닌 한 도둑질도 연쇄살인도 결국엔 버릇이다. 그러니 삶을 바꾸려면 버릇을 바꾸어야 하는데, 버릇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 먼저 바꿀 수가 없다.(p. 61)
▣ 상처투성이의 삶에 말없이 다가와 상처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울림
소설의 제목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작품 속에서 현실의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상징이자, 삶 속 깊게 침투해 있는 “욕망의 기호”이며, 마음속 깊이 울려 퍼지는 “육체의 염원”이다.
아내와 함께 꾸려 나갔던 시골 생활은 가난하긴 했어도, 자식처럼 개들을 키우면서 하루하루 삶의 온기를 느꼈던 시절이다. 전원생활이 가져다주는 자연의 포근함, 여유로운 시간의 유예 안에서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부간의 사랑, 낯선 미래에 대한 순수한 자신감과 긍정적인 희망, 두려움을 이겨내는 간절한 용기, 슬픔을 극복하게 해주는 가족이란 이름의 위대함……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찬란하고 아름다웠기에, 이제는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기에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하고 웃음이 날 정도로 슬프다.
햇빛은 아주 단순한 사물도 찬란하게 만든다. 깊은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도 저 찬란한 빛이 자기 몸에 쏟아지면 생각할 것이다. 햇빛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란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p. 219)
우리는 누구나 비슷한 무게의 삶을 살고,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누구의 인생인들 소설이 아니랴. 그러나 행복했던 시절이 있기에 지금의 “나”가 다시 한 번 오늘을 힘차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절실한 염원은 결국 어둠을 이겨내고 반짝거리는 빛으로 화해 간다.
아내의 말대로, 태인이가 “나”에게 다시 와준다면, 어쩌면 나의 ‘두 번째 인생’(두 번째 대문)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은 자들과 화해하고, 내 유년기와 화해함으로써 내 안의 나와 당당히 조우하는 날이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아스팔트에 저 혼자 살아 쏟아지는 햇빛은 찬란하다 못해 고고하게 번쩍거렸다. 그리고 그림자가 있었다. 사람이 사라지자 그림자가 거리의 주인이 되었다. 우리 곁에 늘 온갖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그 적막한 화면을 보면서 새삼 느꼈다.(p. 12)
▶ 저자 소개 _ 임영태 (TEL: 010-9566-8896)
경기도 전곡에서 태어났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추운 나라의 사람들」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1994년 장편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문 밖의 신화』, 『비디오를 보는 남자』, 『달빛이 있었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수 있을까』, 『무서운 밤』, 『여기부터 천국입니다』, 『호생관 최북』 등이 있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으로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했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생의 어느 한 부분을 안다는 것으로 서로 얼굴 한 번 안 본 사이끼리 위안과 격려를 주고받습니다. 그런 소설이 되기를 바랐고, 그것이 교감되었다는 것에 기쁘고 고맙습니다.” ― 임영태
<느낀점>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문학작품 책을 읽은적이 없었던거 같다. 늘 항상 판타지, 추리소설만 읽었을뿐... 어느덧 내 나이가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판타스틱한 책보다는 잔잔한 느낌과 여운을 주는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1억원의 원고료와 제 1회 장편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여 어떤 고민도 하지않고 이책을 바로 집었다. 잔잔하게 묘사된 일상, 현실과 환상,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넘나드는 몽환적이고 흥미로운 기억의 서사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쉼터를 제공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