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운 좋은 정자(精子) 클럽의 회원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고삐 풀린 초부유층 집안 자녀들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이런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버핏은 억만장자가 자식들에게 부(富)를 물려주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재산 규모 500억 달러(약 54조2000억 원)로 세계 제3의 억만장자인 버핏은 자기 재산 가운데 99%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다행인 것은 버핏 가문에서 가장 나이 어린 손자 하워드 W. 버핏(27)이 ‘운 좋은 정자 클럽’ 회원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워드는 근면이라는 유전자를 ‘오마하의 현자’인 할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듯하다. 그의 성명에서 가운데 이니셜 ‘W’는 ‘워런’을 의미한다.
억만장자 할아버지의 손자라면 파티에서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요트에서 일광욕을 즐기기 일쑤인데 하워드는 다르다. 그 동안 공무원으로 일해온 색다른 이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하워드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워런 버핏의 장남인 하워드 G. 버핏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향에서 초중등 학교를 마치고 일리노이주 디케이터 소재 마운트 자이언 고교에 진학했다. 이후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 자리잡은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정치학과 홍보학을 전공하며 총학생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행정학 석사학위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취득한 것이다.
2008년 버락 오바마 후보 진영에서 선거참모로 뛴 하워드 W. 버핏은 오바마가 백악관에 입성한 뒤 농무부에 잠시 몸담았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다 국방부로 자리를 옮겨 최근까지 아프가니스탄·이라크의 농업개발 책임자로 활동했다.
이제 청년 하워드는 워싱턴 정가에서 벗어나 고향 오마하로 돌아와 콩 농사를 지으며 아버지가 설립한 ‘하워드 G. 버핏 재단’ 이사로 일하고 있다. 하워드 G. 버핏 재단은 소외 받은 세계 빈민들의 생활수준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는 자선단체다.
지금까지 세계 6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현지 농업발전에 이바지해온 하워드는 재단에서 자신의 경험을 살려 개발도상국 경제성장에 기여할 생각이다.
그는 10일(현지시간) 현지 온라인 신문 ‘오마하 월드 헤럴드’와 가진 회견에서 “재단 이사가 폼 나는 직책은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월급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잘리는 자리다.
아버지 하워드 G. 버핏은 재단 이사직 연봉이 13만5000달러지만 아들을 그 자리에 앉히면서 9만5000달러로 내려 책정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며 “아들이 연봉 값을 제대로 하는지 보고 마음에 들면 차후 올려줄 것”이라고 한마디했다.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는 어린 하워드가 내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네브래스카 제2지역구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하워드는 ‘오마하 월드 헤럴드’와 가진 회견에서 “2년 이사직을 모두 채운 뒤 정계 진출에 대해 고려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 http://news.nate.com/view/20110617n02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