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깨어나고 있다. ‘88만원 세대’ ‘이태백(20대 태반은 백수)’이란 말이 상징하듯 한계상황에 내몰리면서도 ‘행동할 줄 모른다’는 지적을 받던 이들이 스스로 일어섰다.
7일 서울 광화문에서는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흘째 계속됐다.
지난달 29일 200여명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열흘 만에 최대 수천명 규모까지 늘어났다. 이날은 집회신고를 냈던 청계광장에 대해 경찰이 집회 불허를 통보하자 대학생과 시민 1000여명이 인근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등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반값 등록금 위해 동맹휴업” 고려대·서강대·숙명여대·이화여대 총학생회 간부들이 7일 이화여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10일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동맹휴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부산대와 전남대 등 40여개 대학 학생회도 10일 동맹휴업을 추진키로 했다. 왼쪽부터 조우리 고대 총학생회장, 하은경 숙대 부총학생회장, 박자은 한국대학생연합 의장, 김준한 서강대 총학생회장, 류이슬 이대 총학생회장. | 서성일 기자 |
집회에 참여한 권용석군(19·국민대 사회학과 1학년)은 “등록금 350만원을 부모님이 내주셨는데, 한 학기 다녀보니 대학 교육이 그만한 값을 하는지 의문이 들어 나왔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후에는 고려대, 서강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 4개 대학 총학생회장이 모여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동맹휴업 추진을 결의했다. 이들은 10일 오후 학업을 중단하고 광화문에서 열리는 대규모 촛불집회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이슬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대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거리에 나와야 할 정도로 등록금 문제는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라며 “9일까지 정부가 답을 주지 않으면 10일에는 분노의 항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에선 법인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행정관 점거농성이 9일째 계속되고 있다. 2005년 상대평가 반대를 내세우며 본관을 점거한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상당수 사립대에선 학내 비리에 맞서 비상학생총회를 성사시키고 투쟁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학생들은 공금 유용 등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박철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지난달 비상학생총회를 열었다. 박원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은 “두 달이 넘도록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대학 운영 자체를 민주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명지대에서도 유영구 전 이사장이 연루된 대규모 사학비리와 관련해 총장 사퇴 등을 요구하는 학생총회가 지난 2일 열렸다. 학생들은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필수과목인 채플(기독교 예배) 수업을 거부하고 학생 대표자들이 단식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20대는 탈정치적이고 개인주의화됐다는 오해를 받아왔지만 실제로는 2008년 촛불집회라는 특별한 정치적 경험을 통해 강한 주권자 의식을 가진 세대”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또 “앞으로 이들이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참여하면서 ‘386 세대’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시민계층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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